특별한 일이 없었음에도 그냥 쉼이 필요하여 연차를 냈습니다.
직장인들에게는 이런 무모하고 계획 없는 결정이지만, 이런 결정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 없이 낸 연차였기에 남는 게 시간이었고 오랜만에 혼자서 영화를 볼 생각을 했고 개봉작품 중에서 30일을 택했습니다.
아침 9시 20분에 시작인 영화를 보기 위해 9시 20분에 극장에 도착해서(실제 영화가 시작되는 시각은 표시된 시각보다 10분 늦게 상영되기에..) 작은 크기의 팝콘과 콜라를 주문하고 9시 28분에 들어선 상영관은 관객은 아무도 없이 좌석은 텅 빈 상태이고 스크린에는 광고만 외롭고 쓸쓸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조조영화라지만 관객이 한명도 없다니, 그래도 한명은 들어오겠지’, 생각하며 아무 의미없는 지정좌석에 앉았지만 역시나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200석은 족히 넘어보이는 대형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언제였더라... 아주 오래전에 인디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극장에서 경험한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 이 영화가 제일 핫하다며, 관객 동원도 연일 1위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데 뭐가 진실인지, 관객 동원 1위인 영화가 이 지경인데 다른 영화가 나오는 상영관은 어떨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암튼, 상영관을 혼자 전세내고 본 영화는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30일>입니다.
영어 제목은 ‘Love Reset’인데 왜 한글 제목은 30일일까? 의문이 들었는데 이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 간단한 줄거리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시(변호사) 준비생인 노정열(강하늘)과 금수저 출신의 영화 PD인 홍나라(정소민)는 영화처럼 만나 짧은 시간에 뜨거운 연애를 하고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흙수저와 금수저 설정에서 짐작하듯 둘은 맞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서로의 생각과 행동들이 서로에게 이해하고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여서 결국 협의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30일간의 조정기간을 받은 두 사람은 얘기치 않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동반 기억 상실에 걸리게 됩니다.
둘의 엄마 도보배(조민수)와 주숙정(김선영)은 두 사람의 기억을 되찾게는 하되, 이혼은 진행하는 조건으로 이혼 전까지 같이 살게하는데, 이 기간동안 두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 채로 다시 사랑을 하게 되는 결론적으로는 해피엔딩의 영화입니다.
2. 저항없는 웃음이 아닌 실소
시나리오 상 소재나 이야기의 개연성 등이 너무 억지스러움이 많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억상실이라 소재는 대체 언제쯤이면 사라지게 될까요?
너무 진부하고 뻔한 설정이기에 배우의 연기 또한 억지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입은 웃고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마음 껏 신나게 나오는 웃음이 아니였습니다.
그 웃음은 어이없음과 비탄과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실소이며 마치 신음과도 같은 것이여서, 저 외에는 아무도 없는 텅빈 상영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이 영화가 현재 우리나라 관람객 1위라니, 여기에서 또 신음과도 같은 실소가 터져나오네요.
3.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 <관객의 중요성>
그런데 어쩌면 만약에, 상영관안에 관객이 가득차 있었다면 받아들이는 상황은 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인식이 다르듯, 수 많은 관객이 다 함께 웃고 울고 할 때, 덩달아 동조되어 마음에 파장이 일렁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OTT에 콘텐츠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최신작품을 먼저 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최근 방영된 알쓸별잡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했던 말처럼, 붐비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영화에 대한 감정을 증폭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힘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수 만큼 또는 그 몇 배로 증폭되기 때문에 우리가 극장을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끊었고, 지금은 OTT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져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천만 영화가 즐비하게 나오는 그런 시대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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