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에서 소희 역을 맡았던 배우 김시은이 지난 10월 5일에 개최되었던 부일영화제에서 신인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올 봄에 있었던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하였고, 지난 9월에는 영화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제43회 영평상에서 신인여우상 수상에 이어 부일영화제까지 신인왕 타이틀 3개를 모두 차지하였습니다.
김시은 배우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오늘 소개할 영화는 <다음 소희>입니다.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2017년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탄생한 영화입니다.
고등학교 여학생이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는데 실습 3개월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정주리 감독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시사프로그램을 보고 이건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알려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희 역에는 앞서 소개해드린 김시은 씨가,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유진 역에는 배두나 씨가 맡았는데,정주리 감독은 처음부터 유진 역은 배두나 씨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희 역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을 할 계획이었는데 우연찮게 김시은 씨를 소개받았고 "소희"가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김시은 씨의 대답을 듣고 바로 주인공으로 낙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소희는 춤추는 걸 좋아하는 환하고 밝고 웃음이 많은 열여덟살 고등학생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졸업전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콜센터에 들어가게 됩니다.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진상 고객들의 온갖가지 욕들을 듣는 건 일상이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해야하고 해지를 신청하는 고객에게는 온갖 회유와 감언이설로 해지를 막아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소희와 그곳에 있는 다른 소희들.
이름만 다르지 실제로 모두가 소희인 현장학습 학생들은 그 안에서 실적을 쌓는 경쟁을 해야하고, 그러면서 소희들은 본래 갖고 있던 웃음도 생기도 희망도 꿈도 모두 일어버리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진짜 소희도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팀장이 자살을 하게되는데, 팀장이 자살한 원인이 회사의 문제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도록 회사는 직원들의 입단속을 시키고 발설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내는 집요함을 보입니다.
이런 일들을 직접적으로 겪는 소희는 부조리함, 분함, 비통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러면서 또 체념하고 단념하는 법도 터득하여 죽어라 일에만 매진합니다. 아니 체념이나 단념이 아닌 오직 일에만 몰두하여 괴로워하는 시간을 업애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일만 죽어라 한 소희는 최고의 실적을 내지만 회사에서 약속한 월급은 제 때, 제 금액만큼 주지를 않습니다. 회사는 온갖 사유외 핑계로 소희가 한만큼의 돈을 주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밤을 새워가며 죽어라 일해도 노력한 만큼의 보상도 주지 않는 현실을 직시한 소희는 어쩌면 앞으로 닥칠 자신의 미래를 자연스럽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한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미래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들은 상실되었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희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보통의 영화는 이렇게, 현실의 현실만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2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또다른 주인공 유진이 등장합니다.
유진은 오랜 병환으로 어머니를 보내고 업무에 복귀한 경찰입니다.
소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발령이 나 이사를 했지만 아직 짐도 풀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의 없는 유진은 가끔씩 소희가 춤 연습하는 곳에서 춤을 췄었습니다. 소희가 죽기전에 둘은 그 공간에서 살짝 마주쳤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때였지만요.
소희의 자살 사건을 맡은 유진은 소희의 자살이 단순한 자살이 아닌 이 사회가 소희를 죽인 것이라는 사실들을 밝혀냅니다.
소희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천천히 파헤치고 관객들에게 낯낯히 보여줍니다.
실업계 고등학생이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 나가서 껶는 고통스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왜 그렇게 되는지,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생생히 밝혀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소희의 밝은 모습, 춤추는 모습들이 나와서 저도 덩달아 좋은 에너지를 받았는데, 영화는 급격히 어두워졌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현실과 사회적인 시스템들이 너무 답답하여 마음이 무거웠고 결국은 소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 가끔씩 볼 수 있는 취업률 높은 고등학교라는 광고의 이면에는 이렇게 악의적이고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것들의 결과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고, 순전히 보이는 것만 보고있었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속 주인공인 소희와 유진이 춤 연습장이라는 공간에 있지만 물리적인 접촉이 아닌 스치듯 지나치는 설정을 한 정주리 감독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감독은 유진이라는 주인공을 모든 관객, 소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우리들이다라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고, 보고 만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소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각자의 일들로, 각자의 사정으로 외면하거나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유진이 소희의 사건에 집착할 정도로 파고든 이유가 미리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부조리한 일들이 사라지게 될까요?
돈과 권력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부조리와 위압에 의한 억울한 일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그 가해자들이 본인들이 상대방에게 가했던 만큼만이라도 그들도 똑같이 힘들고 고통받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지길 희망합니다.
더불어 돈없고 힘없이 매번 피해보고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고 억울함도 해소될 수 있길 바라고 원합니다.
소희 다음으로 소희와 같은 이유로 자기의 생을 끊는, <다음 소희>가 발생되지 않길 바라고 기도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여전히 어두워서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김시은 씨가 말한 수상소감 중 일부를 적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소희들.
저도 소희 중의 한명으로서 뭔가 이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고 짖궂게 구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행복함을 느끼기 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오늘이 무탈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날들이 많았는데, 살다보니 이렇게 상도 받는 날도 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소희들에게
힘들 때는 힘들다고, 아플 때는 아프다고 이야기 하고 그렇게 건강하게 사랑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주며 같이 잘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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