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2023년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다르게 개나리, 목련, 벚꽃 등 온갖 꽃들이 전국에서 일제히 피고 일제히 지는 해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짧게 보여주는 벚꽃이지만, 올해는 날씨마저 짖궃어 만개하자마다 바람불고 비가내려 금새 떨어져버렸습니다. 화무는 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옛 말의 이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꽃진 자리에는 야들야들, 보들보들한 연한 잎들이 연한 연둣빛을 내며 돋아나고 있습니다.
나뭇잎의 모습과 색상이 이때만큼 아름답고 예쁠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와도 같이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고 바라만 봐도 신기함의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의 주말에 저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매주 둘째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토요국악>에 다녀왔습니다.
2023년 첫 토요국악은 지난 3월 11일 2시에 시작하였는데, 벌써 오늘이 세번째 공연입니다.
단돈 2천원의 금액으로 이렇게 고풍스럽고 정갈하며, 때로는 어깨와 온 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명나는 음악을 생생하게 듣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두번은 이렇게 더할나위없이 기품있는 공연을 볼 수 있고
정말 좋은 시절이구나, 이런 호사를 누리는 제가 귀하고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분들께 온 마음을 다해 추천드리며, 오늘 있었던 공연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2, 공연일정 및 안내
4월 8일 공연은 총 여섯개의 프로그램을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양금을 필두로 하고 대금, 단소, 가야금, 거문고, 피리 그리고 장구로 구성하여 연주하는 합주곡 "천년만세"가 첫번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람의 수명이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음악은 조선시대에 어떤 의식이나 잔치 때 연주했던 음악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어떤 의식을 하는 날도 아니고 어떤 잔치가 열렸던 날도 아니었지만, 파란 하늘 하얀 구름 푸른 잎들, 알록 달록 꽃들의 모습만 있어도 여느 잔칫날과 다름이 없는 날이었기에 오늘의 분위기와도 정말 딱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야금 2중주 "하마단"은 2개의 갸야금 합주로 연주하지만 인도 음악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2개의 갸야금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아주 훌륭했고, 빠르게 연주하는 리듬반주와 멜로디 반주의 조화가 기가막혔습니다.
세번째 프로그램은 생황과 단소가 함께하는 연주인 "수룡음"이었습니다. 수룡음이란 물에서 놀고 있는 용의 노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생황은 우리나라 악기 중에서는 유일하게 화음악기입니다.
단소와 생황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어울림은 공연장을 평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음악을 들을 때, 중간 부분부터는 눈을 감고 오직 소리에만 집중하려고 했었습니다. (절대 졸려서 눈을 감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대는 가야금 병창으로 꾸민 "호남가" 와 "화초타령" 소리바탕입니다.
단가는 명창이 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서 하는 짧은 소리입니다. 호남가는 호남 지방의 풍경을 가사로 담아낸 단가입니다. 오늘은 판소리 풍이 아닌 가야금 병창으로, 판소리 소리꾼의 느낌과는 다르게 가야금과 어루러지는 소리가 부드럽고 찰랑찰랑 한 것이 꼭 오늘 불었던 봄바람과도 같았습니다.
다섯번째 무대는 "가인여옥"이라는 제목의 민속무용입니다.
가인여옥은 옥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인데 이 무대를 직접 보시면 가인여옥이라는 말의 설명을 듣지 않으셔도 그 의미를 바로 느끼고 이해하실 것입니다. 무용수들이 입은 한복은 더할나위없이 화사하고 아름다우며, 무용수들의 모습은 정갈하고 단아하고, 웃는 듯하지만 새초롬하고 차가운 듯 하지만 온정이 있는 표정을 보면서 저 자신도 모르게 홀려 들어갈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무대는 3명의 연희꾼들이 펼친 삼도 설장구였습니다.
삼도는 말 그대로 3개도의 설장구 가락을 말합니다. 3개 도의 특색있는 가락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이 작품 하나만 들으면 각 지역의 설장구 가락의 특성을 한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모든 관객들의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가장 많은 박수와 함성, 그리고 추임새를 받았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오늘의 토요국악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의 토요국악은 매월 둘째, 넷째주 토요일 2시에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작은마당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작은마당이라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야외의 마당이라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여기서 작은마당은 실내에 있는 공연장의 이름일 뿐이니 밖에서 장소를 찾느라 헤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밖에서 한참을 헤멨었습니다.)
앞으로의 공연에 대한 프로그램 정보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 국악, 특별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국악
우리는 국악하면 아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국악에 대한 편견이 덜하고 국악공연을 자주 접하고 있어서 가끔씩 주변사람들에게 국악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저도 국악이 아주 특별한 것이고, 그런 국악을 좋아하는 제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토요국악이 열리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 국악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그냥 국악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모두가 국악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즐기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음 음악, 특별한 사람만 찾아보는 음악이 아닌 모두가 즐기는 국악이길 바라마지않습니다.
오늘 토요국악이 열리는 공연장에서,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국악이 아닌 음악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국악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서 작지만 큰 기쁨과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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